우리생활에서 매일 접하는 숟가락,젓가락, 우리는 무심코 쓰고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고 자세히 살펴 보면 우리의 생활 문화 , 식습관, 공예적 기술 축적등 우리의 역사와 고유한 특성이 그대로 배여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입니다.
한국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금속 수저를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찿아 볼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도자기 숟가락 과 대나무 젓가락을 대중들이 사용하고, 일본인들은 옻칠 나무 젓가락 만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1세기경 이미 금속 숟가락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황해도 황주의 흑교역 동쪽에서 출토된 청동제 숟가락은 국자같은 형태인데,1-2세기로 연대 측정이됩니다..
다음으로 경주 금관총 작은 숟가락들도 젓가락은 없이 숟가락만 출토 되었다는 것이 특이하게 보입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합께 출토된것은 공주 무령왕릉 분묘 발굴 때입니다
.
통일 신라시대 유물에서는 다량의 숟가락들이 포개어져 있어 이들은 당시의 중요한 교역 물품이였던것 입니다.
이 또한 숟가락만이 교역 물품이였던것은 여러가지 당시의 생활 문화를 생각해 보게합니다.
숟가락이 당시(통일신라 초기)의 중요한 교역 물품이였다는 것은, 일본 청정원에 보관 되어 있는 금,은숟가락 각 한본씩,청동제 숟가락 약345본, 조개로 만든 숟가락60본들이 말하여주고 있습니다..
청정원이 소장하고 있는 숟가락들 한조씩묶은 헌 종이는 신라의 닥종이며, 충격 방지용으로 끼위 놓은 헌종이에
신라 이두체 문자가 쓰여진 종이도 신라 닥종이입니다.
일본이 신라에서 구입하고자하는 예정 물목이 신청된 문서 '買新羅物解'의기록을 바탕으로 현재 청정원이 소장하고 있는 신라 숟가락들은 AD752년전 이전에 제작된것으로 인정이 됩니다.
현존하는 여러 유물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금속 수저, 특히 숟가락의 경우 중요한 무역 물품이였으며, 우리생활상을 볼수있는 대표적 문화유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숟가락을 더 오래전부터 만들고, 더 많이 만들어진것을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수저는 젓가락을 창안하면서 시작된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먼 옛날 사람들이 불에 먹거리를 구을때,기다란 나무가지 두개로 집어서 손을 데지않고 먹을수있기에 자연스럽게
대나무 젓가락이 발명되었을것이라는것입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긴 대나무 젓가략을 사용하지만, 그역사는 BC3000년부터 시작되었다 합니다.
젓가락의 역사가 깊다보니 중국에는 두개의 긴 막대 젓가락에 얽힌 풍습도 다양하게 발달하였습니다.
신랑,신부가 새로운 출발을 하게되는 첫번째 준비가 한쌍의 공기와 젓가락을 빨간 끈으로 묶어 [자손 공기]라 하는데, 자손 번성을 축윈하는 뜻을 갖는다고 합니다.
신혼첫날 신방의 창문밖에서 젓가락을 던져넣어,언제 아기를 낳을것인가를 점치면서 신랑 신부를 축윈하는 지방도 있습니다.
젓가락은 단순한 두개의 긴 막대이지만 그활용성과 가치는 매우 크다고 봅니다.
또한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가락의 근육을 다각도로 쓰면서, 30여개의 관절과 50여군데 근육을 움직이면서, 손재주와 대뇌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의료게에서도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젓가락에 대한 여러 풍습들과는 다르게 흙으로 만들어지는 중국의 도자 숟가락에 관한 배경은 아직 까지 별로 찿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1세기경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청동제 숟가락 같은 형식의 토제 숟가락이 중국 정주시 동한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형식은 유사 하지만, 재료는 흙인것입니다.
오늘날 중국 도자기 숟가락의 원형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중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젓가락 보다는 숟가락에 얽힌 이야기가 압도적입니다.
'그사람 밥술이나 먹는다.' '한술 뜨고 나가라'에서 술은 숟가락을 뜻합니다. 그것은 '수'의 원말이 '술'이기때문입니다. '숟가락'은 '술+가락'입니다. 우리말은 원말에 있던 'ㄹ'받침이 다른 말과 결합하여서 'ㄷ'으로 바뀐것이 많이 있습니다.
'숟가락 놓는다.' '숟가락 엎어 농으면 재수없다' '슬을 가까히 잡으면 가까히, 멀리 잡으면 멀리 시집간다'
'첫술에 배 부르랴' 등,등
우리가 이처럼 숟가락에 관심이 높은것은 결국 끓여 먹는 탕과 국물이 많은 음식 문화 때문이 아닐까 짐작 됩니다.
물기 있는 음식으로 입안을 적시는것을 '술적심'이라고 했을정도로 첫술은 국물로 시작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출토된 금속 청동제 숟가락도 국자로 보이는 디자인이기에. 당시에도 국물 음식이 주도했다는 증거입니다.
맛있는 탕종류 음식을 먹기위하여서 우리 선조들은 커다란 솥도 만들고, 국자도 만들고, 숟가락도 만들고, 결국은 젓가락도 만들지만, 그만드는 재료는 금속인것 입니다.
그러한 전통이 이어져서, 오늘날 우리는 금속 수저를 대중적으로 쓰게 된것입니다.
흙이나 나무에 비한다면 재료를 다루기에 여러가지 전문적, 과학적 경험은 있어야 금속 수저를 만들수 있습니다.
우선, 금속을 합금할수있는 소위 연금술이 있어야합니다.
금속을 녹이기위한 열은 어떻게 얻을수 있으까?
녹인 금속을 다양한 공구를 사용, 형태를 만든다는 것도 상당한 노우 하우에서 가능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금속을 다루는 기법은 왕족과 권력자들 고유의 영역이였습니다.
그들도 독극물을 걸러내기위하여 금속 수저가 필수품목입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금속 수저는 구경도 못해본 것 이지요.
왜냐하면 금속공방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기에, 대중의 수저를 금속 으로 만드는 관습은 처음부터 없는것입니다.
나무, 대나무, 흙을 빗어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활 문화가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아예 처음 부터 금속 수저 였다는 것인데, 이게 참 대단하게 생각됩니다.
상상해보건데, 금속장인들이 동네마다 많이 있고, 국가 권력이 막지않고 금속 공방을 장려 했다는 것입니다.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쇠를 다루는 가문의 후예였을것으로 추정한다면 수많은 금속장인들을 쉽게 상상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 우리도 모르고 무심하게, 편리하게 쓰고 있는 수저를 통하여, 우리의 탁월한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서'흙수저'를 계급론으로 비유하는것을 보면서,금속 수저의 오랜 역사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할수 있는 비유인가? 하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한국사람들은 태여날때 모두가 ' 금속 수저 물고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