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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신구문화연구회/김승희의 글

[겨레얼 제 15호] 동그라미 속에 담긴 미학, 가락지-김승희 글

 

 

2014.08 겨레얼 제 15호

 

 

 

 

 

동그라미 속에 담긴 美學, 가락지

 

 

 

사단법인) 우리장신구디자인연구회 대표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명예교수

김 승 희

 

 

 

 

█ 우리나라 전통 가락지의 역사와 유래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인지부터는 모르지만 가락지가 신분의 관계없이 일반화되어 착용된 것으로 보인다. 가락지 재료가 금, 비취, 호박 등 고가인 경우에 궁중 안에 왕가나 양반계급에서, 은, 칠보 등은 중산층에서, 구리, 철 등은 서민층에서 착용되었다.

 

흔히들, 가락지는 중국의 디자인을 영향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는 똑같은 두 개의 반지를 쌍으로 같이 끼는 경우가 없으며 일본에서도 여성들에게 금속을 몸에 지니는 것이 금지된 관행에 따라 가락지와 같은 장신구들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 가락지는 똑같은 디자인의 두 개의 반지가 쌍으로 끼어지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와 같이 쌍으로 끼는 반지는 서양 장신구의 역사에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가락지는 우리고유의 정서와 역사성을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가락지에 대하여 기록된 문서나 어떤 시대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하는 자료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아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야 할 대상이다.

단지 가락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구전되어 전해지고 있다.

 

가락지는 민간에 전승되는 전설, 비화에 자주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전란과 병란, 민란을 자주 겪은 경우에 가락지에 얽힌 여러 사실들은 비극이기도 하고 행운이 되기도 하였다.

구려 시절에는 거의 10여년마다 중원 세력과 전쟁의 난리를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이산가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아내가 전쟁 후 재회할때는 서로 확인하기위하여 구리가락지로 짝을 맞춰서 서로를 확인했다는말이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략으로 인하여 수만명의 처녀들이 공녀로 바쳐졌다. 이 때 가락지를 나누어 가짐으로 후일에 귀향하였을 때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신표로 쓰여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가락지하면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기생 논개의 가락지이다. 논개는 열 손가락에 굵은 가락지를 끼어 양쪽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여 왜장 계야무라 로스케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자진하였다.

이때의 가락지에는 나라를 지키고자하는 가냘픈 여성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가락지가 의미하는 것은?

 

한국 복식 문화사전에서는 ⌜가락지는 원래 장식물이기보다는 신분확인을 위한 신표인 신물(信物)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남녀의 애정에 대한 믿음과 절개의 징표로 쓰였다⌟고 정리되어있다.

 

가락지에 나타나는 문양들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억압된 여인들의 염원과 희망을 표현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었다. 가락지 위에 표현되는 문양들의 의미는 가족의 건강, 가정의 화목, 다산, 영복 등을 기리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주로 등장하는 문양은 박쥐문이 가장 많이 쓰였고, 목단문, 국화문, 매화문, 연화문, 당초문, 복숭아문, 난초꽃문, 네잎꽃문, 나비문, 백일홍문 등이 사용되었다.

가락지의 특징은 똑같은 문양의 외지가 쌍을 이루어 두 개를 같이 낀다는 것이다. 똑같은 문양 두 개를 쌍으로 낀다는 것은 특별한 뜻이 있는것이고 그것은 바로 가락지가 장식물이기 보다는 신분확인을위한 신표이며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룰 때 부부일심의 의지가 확고하게 자리잡게하는 상징물인 것이다.

 

가락지는 단순한 장신구의 의미를 넘어서 대를 물려줄 수 있는 그 집안의 전통과 가풍의 상징으로 대변된다고 본다.

상징적인 의미와 가치 때문인지 가락지는 착용성 보다는 비교적 크고 두툼하게 제작되어 오랫동안 간직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게, 친정어머니로부터 딸에게 가락지는 가문의 가보로 전해졌고 전통을 이어주는 폐물로 인정되었다.

한국에서의 가락지에는 가문의 영광과 후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염원과 남,녀 또는 음,양의 화합의 뜻이 들어있는 상징적 장신구이다.

 

 

 

영친왕비 비취 가락지, 호박 가락지

유물번호; 장신구-137,139

크기;(cm)지름3.5,두께1.4/ 지름3,두께0.9 재질; 호박(금패), 옥(경옥)

 

 

 

동그라미 속에 담긴 우리미학

 

가락지 한 짝에는 양의 동그라미(Positive Space)와 음의 동그라미(Nagative Space)가 공존한다.

 

물리적 공간(양의 공간)과 여백의 공간(음의 공간)의 반복을 한 형태 안에 넣었다는 가장 뛰어난 조형 예술적 측면도 돋보이지만 똑같은 두 개의 동그라미가 쌍으로 겹쳐져서 한 손가락에 끼워진다는 기능적 면으로도 탁월함을 지니고 있다.

 

순수한 조형 예술로도 완벽하지만 그것을 착용하고 아름다움을 즐기며 또한 가족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신표가 되는 것이다. 남녀화합과 부부일심의 의지, 가정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의 대표적 미와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 가락지 인 것이다.

 

 

 

 

█ 전통 가락지의 현대화, 세계화 어떻게…

 

가락지는 서양식 보석 반지에 밀려 이제 잊혀져가는 장신구이다. 가락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역사속에 중요한 생활예술이며 철학을 담고있던 장신구를 살리기 위하여 현대인들이 좋아할 수 있는 디자인 즉 현대적 감성이 보여져서 디자인이 요청된다고 본다.

 

또한 가락지의 의미와 역사적인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보도자료, 언론홍보가 많이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언론의 관심, 많은 디자이너들의 관심은 곧 우리 가락지의 역사성과 의미를 되 찾을수 있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우리의 것을 찾아 그것을 연구하고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세계화를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수복 은 흑비취 쌍가락지 용 은 흑비취 쌍가락지

- 정은, 흑비취 - 정은, 흑비취

디자인 김승희 디자인 김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