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으로 그린 자연의 시정(장소현, 극작가, 미술 평론가)
금속으로 그린 자연의 시정(詩情),
시정어린 조형으로 노래한 관계론
-금속조형작가 김승희 작품론
장소현 (극작가, 미술평론가)
작가 김승희의 40년 넘는 창작생활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예술가로서 그 동안 발표해온 다양한 작품세계는 물론이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자, 한국 현대금속공예 개척자로서의 공적을 함께 입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김승희는 금속공예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공예의 한계를 극복하고, 풍경이 담긴 그릇, 대형화면의 금속으로 그린 그림을 거쳐, 십장생을 주제로 한 입체 조형작품으로 꾸준히 표현영역을 넓혀왔다. 금속공예가에서 금속조형작가로 작가의식과 활동범위를 성공적으로 넓혀온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작가의 창작 의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당시 우리의 금속공예가 처했던 시대상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본격적 활동을 시작할 무렵 우리나라의 금속공예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제품에 밀려 이미 설 자리를 거의 다 잃어버린 상태였다. ‘예술공예’라는 이름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상태였고, 전통 기능을 보유한 각 분야의 장인들도 그것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서 손을 놓는 형편이었다.
금속공예가들은 ‘제품’과 ‘작품’ 사이에서 고민하며 활로를 찾아야 했다. 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였다. 이를 테면, 전통을 더욱 철저하게 파고들어 전통의 아름다움을 재현할 수도 있고, 전통의 미의식을 새롭게 해석하여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길도 있고, 과감하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예술성을 발휘하는 길도 있었다.
작가 김승희는 기존의 금속공예라는 울타리를 과감하게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살리는 과감한 도전을 택했다. 고여 썩어가는 웅덩이에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둑을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김승희가 사명감을 가지고 진행해온 공예의 외연 확장 작업은 작가의 창작의욕과 시대의 요구가 조화를 이룬, 매우 성공적인 해결책이었던 셈이다. 그것은 금속공예계를 개척하고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주어진 절박한 의무이기도 했다.
꾸준히 확장되며 변화를 거듭해온 김승희 작품세계의 변화를 작가 자신은 다음과 같이 연대별로 정리했다.
70년대- 자연의 단면 /한국 금속공예의 역사적 뿌리 찾기
80년대- 풍경이 담긴 그릇 /기능과 장르를 넘다, 자유에 빠지다.
90년대- 민화, 그리고 투명한 공간 /갈등도 화합도 껴안는 재해석의 힘
2000년대- 금속으로 그린 풍경 /경계와 시대를 가로지르다.
김승희는 이처럼 그림, 조각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면서도, 결코 금속공예의 근본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왜냐하면 그는 공예의 위상을 높이는 작업 이상으로, 공예를 생활미술로 정착시키고, 예술의 민주화를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시정(詩情)어린 조형
김승희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시정(詩情)어린 조형으로 노래한 관계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승희의 작품에는 자연사랑, 이야기, 시와 음악이 녹아들어있다. 그리고 시원하게 바람이 통하고, 만남과 관계가 소중하게 다루어진다. 작은 장신구부터 커다란 조형작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작가정신이다.
김승희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평론가들이 다양한 글을 통해 정리했다. 그런 평론들의 제목만으로도 전체 작품세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물질과 정신을 통합시킨 서정 세계.”-박래경, 1987
“물제작적(物製作的)인 정물화”-유준상, 1991
“내밀적(內密的) 시정의 풍경.”-이일, 1995
“생활 속의 예술-공예. 예술장신구-작지만 큰 이야기”-이재언 2001
“모더니즘적 구조를 실현하는 미니어처”-고충환, 2001
“자연의 시정: 단순한 구성과 추상의 미학으로 빚어낸 장신구의 예술성”-장동광, 2004
“낯선 경계로 접어들 때마다 빛나는 것”-이재언, 2006
이들 평론에는 시정, 서정, 이야기라는 낱말이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런 특징은 작품의 제목에서도 확실하게 읽을 수 있다. 제목만으로도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우리들의 언덕, 사과나무, 자연의 단면, 산, 산길, 뉴팔츠의 석양, 산에 오르면서, 노을, 여명, 감나무가 있는 풍경, 미친 나무, 멍청이나무, 새싹, 자연의 율동, 바람과 무지개, 실내풍경, 바람, 풍경, 축복의 사계, 가을주머니, 잎사귀,
삼각형을 위한 변주, 하염없는 생각, 오케스트라, 투명한 공간, 뫼비우스의 띠, 기쁜 소식,
은구와 잎사귀가 있는 정물, 불로초가 있는 정물, 정물-풍경, 삼색단지, 막힌 그릇,
음과 양,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 등등 매우 구체적이면서 시정과 서정이 넘친다.
▲시적 울림과 음악성
김승희 작품에서 시(詩)적 울림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작품의 제목들만 봐도 작가 자신이 시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하는 자세를 읽을 수 있고, 많은 평론가들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이야기와 음악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우리들의 언덕> <하염없는 생각> <미친 나무> 같은 작품 제목이 주는 울림은 곧바로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정서다. 무슨 이야기일까 상상력을 자극한다.
음악성은 더 중요한 부분이다. 작가 김승희는 <오케스트라> 같은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음악적 운율을 담으려 시도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음악성이 짙게 배어 있다. 그것은 금속의 속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쇠붙이는 저마다의 소리를 머금고 있다. 아주 긴장된 상태로 소리를 보듬어 안고 있다. 그것을 때리거나 치거나 긁거나 문지르거나 하면 그 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작가 김승희는 조형을 통해 그 쇠붙이 소리들을 끌어내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참으로 특이한, 그리고 중요한 재능이다.
▲작은 자연
작은 장신구로부터 대형 조형작품, 설치작품에 이르기까지 김승희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연사랑과 전통의 현대화다.
특히 자연은 김승희 작품세계의 조형적 핵심을 이루는 주제이다. 그의 아호 소연(小然)은 ‘작은 자연’이라는 뜻이다.
“이 모든 인문학적 배경 중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아무래도 자연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즉 작가의 조형작업에는 시종 자연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서려있고, 자연을 조형으로 옮기고 싶은 욕망이 어른거린다.”
“작가는 그런 자연을 그리고 싶고, 그 자연이 만들어준 휴식과 쉼, 정화와 치유의 계기를 조형의 안쪽으로 불러들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상실된 자연이며 존재며 원형을 마음속에 복원하고 싶고, 그 마음 그대로…”-고충환
김승희가 그리는 자연은 매우 구체적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친숙하고 편안한 풍경들이다. 동네 뒷산의 소박한 아름다움, 산책길에서 만나는 바람과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작은 풀꽃들…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포근한 사랑의 손길들이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그렇게 해서 <산> <산을 오르며> 연작이 태어났다.
동시에 그 자연은 추상적이며 근본적인 것이기도 하다. 누구의 가슴에나 근원적으로 들어 있는 자연… 말하자면 어머니의 품안이나 고향 같은 것… 그러므로 따스하고 포근할 수밖에 없다.
▲금속으로 그리는 그림
‘금속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개념은 김승희 작품의 또 다른 줄기이다. 작가 자신이 정리한 연대별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작가의 연륜이 길어질수록 공예에서 회화, 조각으로 조형적 관심이 확장되어 감을 알 수 있다. 90년대 민화(民畵)에 대한 관심과 재해석을 거쳐, 2000년대에는 <금속으로 그린 풍경>이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확장은 김승희의 조형 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쇠로 그린 김승희의 그림들이 편안하고 넉넉하다. 그것은 비움의 미학에서 비롯된다.
금속 회화 작품은 쇠를 짜르고 붙이고 다듬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금속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단순화될 수밖에 없는데, 김승희의 경우에는 그 단순화, 대담한 생략, 비움 등이 오히려 조형적 강점이 되며 상승효과를 낸다. 붓으로 그린 그림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 김승희의 경우 ‘그림을 그린다’가 아니라 ‘그림을 만든다’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그림을 만든다…
김승희처럼 공예에서 출발하여 표현 영역을 거침없이 넓혀가는 경우, 공예적 요소나 디자인적 틀, 장식성 등이 자유로운 표현에 걸림돌이 되기 쉽다. 실제로 그런 예를 많이 본다. 대부분의 경우 그 걸림돌에 걸려 넘치거나 모자라게 된다. 그런데 김승희의 경우는 그 걸림돌들을 징검다리나 도약대로 삼아 새로운 지평으로 뛰어넘어가는 슬기를 보여준다.
김승희는 작품의 소재를 민화(民畵)에서 빌려온 예가 많다고 하는데, 소재를 빌려왔을 뿐 공간 배치나 과감한 여백 남기기 등에서는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열어간다. <투명한 공간> 연작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입체적 공간 인식이나 <금속으로 그린 풍경>에서 바람이 통하는 열린 공간 처리 방법 등은 매우 탁월한 조형언어다. 김승희 식의 개성적 여백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든 미술 분야가 다 그렇지만 특히 공예에서는 손과 머리와 가슴의 균형이 핵심적인 요소다. 어느 하나가 튀어나와 조화가 깨지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기능공에 머무느냐 작가가 되느냐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작가는 작품에 따라 손과 머리와 가슴의 몫을 치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물론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조절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작가의 자기 제어가 필수적이다.
특히 김승희처럼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때는 더욱 치밀한 컨트롤이 요구된다. 금속작품의 제작과정이라는 것이 대체로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노동의 연속이기가 십상이기 때문에, 작가는 결정적인 순간순간 고도로 집중하여 생각과 마음의 방향을 바로 잡고, 그에 맞게 손을 움직여야 한다. 작가 김승희는 그 까다로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쇠에 따스함을 불어넣는 일
금속공예는 기본적으로 쇠를 다루는 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리고 금속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
쇠는 쉽게 변형시킬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성질이 고약하고 고집이 세다.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원하는 조형을 얻어낼 수 없다. 그런 쇠를 녹이고 자르고 붙이고, 하염없이 두드리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만드는 사람과 쇠가 한 마음이 되어 따스해진다. 은근과 끈기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작가는 “전시회에 와서 작품을 감상한 관람객들이 금속인데도 참 따듯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김승희의 금속 작품들이 부드럽고 따스한 것은, 금속의 본질을 잘 알고 체화(體化)시켰기 때문이다. 정복하고 마음대로 다스리려 하지 않고, 살살 달래가며 하나로 어우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에 걸친 작업이 필요하다.
쇠는 차갑고 날카로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쇠붙이의 본디 모습은 부드러운 흙이다. 광석은 돌덩어리이지만 결국은 쇠를 머금은 흙이 덩어리져 굳은 것이다. 그 광석에 열을 가해 우리가 원하는 쇠붙이를 얻는다.
흙과 열. 그러므로 쇠붙이는 본질적으로 부드럽고 따스한 것이다. 일부러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벼려 무기나 연장으로 만들지 않는 한 그러하다.
금속공예는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다. 그리고 하늘과 이어진다. 그릇이나 수저처럼 먹고사는 일, 즉 생명에 관계된 물건들은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절대 안 된다. 하늘과 연결되는 제기(祭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쇠붙이로 살생의 무기를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쇠붙이로 연장을 만들고, 범종이나 부처, 아름다움을 위한 도구들과 돈을 만들었다. 아주 할 수 없는 마지막에나 마지못해 무기를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 전통 금속공예의 기본 마음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금속공예 작품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야 한다. 거짓으로 마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속임수는 사람의 마음을 해칠 수 있다. 철저함은 금속공예 작가의 기본자세다.
▲전통의 현대화
김승희는 “난 끊임없이 전통적 주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것이 재미있어요.”라고 말한다. 물론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한다. 한국공예미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현대화 노력은 김승희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핵심이 되고 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승희가 우선적으로 한 일은 한국금속공예의 역사적 뿌리를 찾는 작업이었다. 미국 유학시절 “한국의 금속공예는 어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대로 된 답변 하나 못하고 얼굴만 붉혔던 뼈아픈 기억 때문이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과 전통기능 보유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의 전통기법, 재료, 조형성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미학적 특징들을 연구하게 된다. 기술적 측면이나 조형적 시선과 더불어, 한국미의 중요한 특징으로 언급되는 ‘구수하고 큰 맛’(고유섭), ‘무작위의 작위’(김원룡) 같은 미학적 견해에도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그런 깨달음은 작품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한국 금속공예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을 공부하면서 그가 얻은 결론은 “우리나라는 '금속공예의 나라”라는 자부심이었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그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전통을 오늘날에 되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이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역사는 매우 깊고 다양하며, 수준은 대단히 높다. 먼 옛날의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부터 신라의 금관을 비롯한 귀걸이, 허리띠 등의 장산구들, 사리함을 비롯한 불구(불구), 큰 규모의 작품으로는 에밀레종 같은 범종, 옥새(玉璽) 같은 궁중용품들, 식기류 같은 생활용품으로부터 제기(祭器), 엽전, 농기구, 장도, 무기류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들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금속공예의 나라답다.
하지만, 이처럼 훌륭한 전통이 얼마나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관심을 갖지 않은(또는 못한) 동안 많은 전통기능의 장인들이 사라져버리면서 맥이 끊겼고, 그 대부분은 이미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다.
나라에서 전통문화 각 분야의 대표적 장인들을 인간문화재 또는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하고 있다. 금속공예 분야에서도 두석장(豆錫匠), 조각장 또는 조이장, 금속장(金屬匠) 등의 장인들이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아,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접이 영 시원치 못한 실정이다. 물론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형편이 이러하니 뒤를 이으려는 젊은이들도 귀할 수밖에 없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맥이 끊겨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전통의 현대화는 금속공예 작가들에게 주어진 큰 숙제다. 해결 방법을 찾기 힘든 골치 아픈 숙제…
앞에서도 말한 대로, 전통의 현대화는 김승희 작품세계의 중요한 핵심이다. 물론 그가 추구하는 방향은 전통 기능을 되살리는 길보다는 과감한 현대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의 작업은 장르 파괴, 재료의 범위 확대 등을 통한 공예의 외연 넓히기로 이어진다. 금속 외에도 돌, 나무, 보석, 철 등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공예의 개념 자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이를 테면, 장신구의 개념을 단순한 액세서리에서 ‘움직이는 조각’으로 넓히는 식이다.
그런 한편으로 전통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훌륭한 기능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자신에게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기능을 보유한 장인들과 공동작업을 하기도 한다.
작가 김승희에게 전통의 현대화란 서양에서 배워온 과학적 기술과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전통 기능을 조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기술뿐만 아니라 조형미, 미학적 가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질 위주의 서양적 가치관에 동양의 정신세계를 접목시키는 일…
김승희는 민화나 십장생처럼 전통에서 구체적 소재를 얻어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전통의 현대화는 구수한 큰 맛, 무작위의 작위 같은 정신적인 세계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여백의 미, 은근한 멋, 소박한 아름다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 풍류나 선비정신, 번짐과 스며듦, 은은한 울림 같은 우리 고유의 미감(美感)들이다.
김승희가 추구하는 또 다른 전통의 현대화는 공예와 사회의 관계, 공예의 위상, 장인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것이다. 한 마디로 줄이면, 옛 사회에서 공예가 받았던 푸대접이 오늘날에도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그래서 그는 쟁이라는 낱말에 거부감을 갖는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저한 장인정신을 갖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쟁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당당한 자기 소신과 작품세계를 가진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작품, 진정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계의 소중함
공예는 쓰임새와 아름다움을 두 축으로 한다. 쓰임새는 소통과 관계맺음을 의미한다. 사용하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고 생각하고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예의 본질이다.
그래서 김승희의 ‘금속으로 그린 그림’ 작품은 화가나 조각가들의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자기 이야기를 하되, 일방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편안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관계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 재료와 재료 사이를 말한다. 전시회 제목을 <너와 나> <동행> <특별한 관계>로 붙인 것에서도 그가 관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동행>
나와 네가 함께한다는 것은
나와 네가 함께 간다는 것은 아름답다
나와 네가 처음부터 함께하고 함께 간 것은 아니었다.
나와 네가 동행할 수 있기 위해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혼자 가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와 네가 함께 가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해주는 예의가 필요하다.
연인이든 부부든
감싸고 위로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너와 나
너와 나는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
작가의 연륜이 깊어감에 따라 큰 규모의 작품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김승희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신구만으로 전시회를 마련하기도 하고, 대규모 작품과 장신구를 함께 전시한다.
‘아담하다’는 낱말은 공예의 핵심적 가치일 것이다. 공예품은 인간의 생활 속에 알맞고 편안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는… 그리고 그건 아름답다는 말과 통하는 동시에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다.
자연의 섭리 가운데는 “무리하게 커서는 안 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가령 주물을 뜰 때 무작정 큰 것을 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자기를 구울 때도 크기에 한계가 있는 것은 “거기까지만 하라.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는 자연의 명령일 것이다.
김승희는 작은 작품 속에도 얼마든지 큰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의 작업 방향도 그렇다. 그는 금속공예가라는 명칭보다 조형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액세서리라고 부르는 것에 실망하고 낙담한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장신구를 ‘미니애처 조형작품’라고 부른다. 그렇게 봐주기를 원한다.
그것은 기존의 틀을 깨고 공예의 개념을 넓히려는 노력의 첫 걸음이고, 전통의 장인정신을 존중하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쟁이와 예술가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고, 작가의식을 가진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공예의 본질인 쓰임새 또한 현대적인 개념으로 넓어져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제품과 작품의 구분도 엄격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대량생산이냐 아니냐를 넘어선 작가정신의 문제인 것이다.
김승희가 마련했던 브로치 전시회를 예로 들어보면, 작은 것에 담긴 큰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브로치는 가슴에 다는 장신구다. 대개의 경우 왼쪽 가슴에 달게 되는데, 그곳은 심장이 있는 곳이다.
‘가슴’이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가슴’이라는 낱말은 많은 경우 우리의 마음이나 감정과 이어진다. 우리말에서 흔히 쓰이는 가슴이 미어진다,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리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등등의 표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영어에서도 마음을 heart라고 표현한다. mind라는 낱말도 있지만,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낱말은 heart다. 예를 들어, 생 떡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명문장 “마음으로 봐야 바르게 볼 수 있지.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이라는 문장의 영어 번역은 “It is only with the heart one can see rightly;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이다. 가슴을 곧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장신구의 위치는 매우 뜻이 깊다. 머리에 비녀나 머리핀을 꽂고, 가슴에 브로치를 달고, 손에 반지를 끼는 것이 대표적인데, 머리와 가슴과 손은 인간 감정 표현의 핵심이요, 미술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감정 표현의 가장 중요한 곳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고, 오랜 세월 그렇게 이어져왔다.
따라서, 가슴에 다는 장신구인 브로치는 단순히 아름다운 조형물이 아니라, 거기에 생각과 감정이 담겨야 마땅한 것이다. 자연과 노래와 이야기가 거기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 바로 그런 것이 장신구의 본질이다.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장신구를 고를 때, 내게 잘 어울린다, 안 어울린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머리가 아니고 가슴이다. 본능적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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