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 보도자료

<물질과 정신을 통합시킨 서정세계> 박래경_미술평론가,1987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7. 15. 11:16

물질과 정신을 통합시킨 서정세계

김승희의 금속작업에 대하여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는 물질 내지 물체 세계에 대한 현대인의 새로운 관계 설정와 여기에서 비롯되는 물적인 성격의 부각이라 하겠다. 이러한 경향은 어느덧 순수와 응용미술의 인위적인 경계선을 타파하게 되고, 미술을 반 미술로까지 희생시켜가면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확대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때 지배적으로 적용되었던 미술 각 장르의 구분조차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볼 때, 재료가 갖는 물성을 일찍이 간파한 공예의 여러 분야는 어느 미술보다 새로운 발전에 기여하는 위치에 놓인다. 그것은 또한 공예 분야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향의 자극이다. 즉 공예가들의 예술적 표현욕구 실현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날 전승공예나 산업공예 사이에서 기능적인 것이나 더욱 자유로운 표현으로 조형적인 작업을 하는 많은 미술 공예가는 이러한 현대미술의 특성과 흐름에 관여하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날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기능과 용도 그리고 미와 조형의 문제를 두고 금속을 주재료로 하여 제작에 열중하는 이들 공예가들은 새로운 시각에서 현대공예의 과제를 그들 나름대로 풀어가고 있다. 그 동안 용기(容器), 장식물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던 금속공예가 김승희의 경우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야기해 볼 만하다. 금속작품의 경우, 그는 먼저 다양한 재료를 선택, 사용하는 취향이 있다. 금, 은, 적동, 황동, 백동, 티타늄 등과 또 다른 금속과의 합금에서 여러 재료상의 변화를 시각화하고 있다. 각기 의도하는 색감이나 질감을 위하여 독특한 화성기법을 삽입한다. 그것은 그에게 합리성의 목표를 최대한 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대학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발달된 현대 금속공예를 익히고 돌아왔는데, 중요한 것은 귀국 후에 그가 감동스럽게 체험한 우리나라 금속공예 기법의 재발견이다. 그는 우리나라 장인들에게 계승된 선조의 경험과 장인의식 그리고 합리적인 공정, 세련된 미감을 간단한 공구로써 완수하고 있는 사실에 놀란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것은 그가 우리나라의 우수한 전통 금속기법을 경험한 다음,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터득한 전통 기법들을 응용하면서 실험적인 시도를 과감히 하게 된다. 작업과정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능성을 터득하면서 또 다른 방법들이 다시 적용되며 작품의 표현영역을 확대해갔다.

그는 한때<산山>과 같이 자연형태에서 기본 착상을 하여 삼각형, 사각형, 직선, 곡선 등을 평면 구성한 용기 연작을 내놓는다. 그 형태들은 평면구성적인 요소로 출발하여 3차원적인 공간을 조성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조형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산> 작품들과 더불어 그는 평면 벽장식을 제작하는데 표면의 회화적 효과를 위하여 칠보(Enameling)와 같은 기법도 발표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들은 구체적인 자연풍경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것들로서 몇 년 동안 지속되다가 최근에 이르러 새로운 방향으로 나타난다.

여전히 주재는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나 좀 더 추상적이고, 형태는 단순화된다. 그의 추상적이며 단순한 형태에 대한 관심은 재료 자체의 특성을 자연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와 더불어 단순화함으로써 작품의 표면 질감, 색채 효과를 높이고 싶은데서 비롯된 듯하다. 이러한 작업 태도는 물성의 근원을 찾으려는 현대미술의 경향과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으나, 그의 작품에서는 그가 축적한 여러 기법이 자연스럽게 활용되어 그의 감성이 재료에 잘 이입된 듯 하여 다른 미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작가 특유의 서정시와 같은 표현력을 보여준다. 물질과 감성을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그의 지속적인 노력은 그가 현대미술에서 해나갈 역할을 지켜보게 한다.

박래경-미술평론가,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