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멋-한국의 공예전통을 새롭게 바라보다
은수저의 매혹
김승희의 금속공예 혹은 금속조형의 세계 속에 줄기차게 흐르고 있는 전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의 동기는 그가 미국 유학을 하던 시절러 거슬러 올라간다. 금속공예를 공부할 때, 미국 친구들이 한국 금속공예에 대해 건진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한 기억은 귀국 후 그를 국립중앙박물관 전통기능 보유자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금속공예의 역사를 탐구하도록 한다.
이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단조기법을 은수저를 만들고 있던 장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작업에서 한국 금속공예 전통의 중요한 혈맥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크랜브룩 대학원의 금속공예 수업시간에 수저를 만들면서 느꼈던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장인들의 수공기술에 매료되어 전통공예 혹은 전통미의 현대적 재해석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가 꿈꾼 우리 금속공예의 전통 회복을 위해 내디딘 첫발은 1978년 인사동에 금속공예 전문샵 '금사랑'의 개업이었다. 칠보예술가 고故 김기련 선생이 1960년대 중반 열었던 '도라장'을 이은 현대적인 의미의 금속공방이었던 이 '금사랑'은 은수저, 촛대, 주전자, 금속용기 등을 전시, 판매하는 장소였다. 1976년 국민대에 부임하여 금속공예가이자 교수로서 그리고 금사랑 운영 등 바쁜 나날을 보내던 무렵, 김승희는 우연한 기뢰에 강원도 춘천 지방에서 옥광玉鑛이 발견되어 양질의 옥이 생산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에는 귀한 옥이 시중에 너무나 값싸게 유통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옥 장신구, 옥 그릇 등이 옛것의 모방에 머물고 있었다. 이런 현신을 목격한 그는 금속공예가의 사명감을 느껴 옥 디자인 개발에 나서겠다고 작정하게 된다. 당시 옥을 수출 상품화하여 제조하고 있던
'고려제이드'라는 회사를 찾아가 디자인 개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고 협력 작업에 돌입한다. 이 작업의 결과가 1981년 금사랑에서 열렸던 <김승희 연옥 디자인>전이다. 이 개인전에서 그는 옥으로 된 브로치, 팬던트 등에 자신의 조형적 형태들을 이식하거나, 현대적 감각으로 고안된 백통장식을 결합한 혼수용 함 등을 발표한다. 1984년 귀금속보석점 명보랑 초대전으로 열렸던 <5월의 만찬 - 이승원, 유리지, 김승희 3인>전에 반상기, 구절판 찜기, 촛대, 은수저 등을 제작한 은기를 본 관객들의 호평에 힘입어 많은 주문을 받은 김승희는 잠시나마 은기 작업에 매진하게 된다. 이때 제작한 은기는 한국전통의 비례미와 형태미가 살아 있는 가운데 현대적인 조형감각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가 만든 은수저는 그 형태미나 실용성, 문양의 디자인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중요한 품목이다. 이 전시는 그에게 전통 식기, 은기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했고, 이후 작업의 변모 속에서도 한국의 전통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이러한 김승희의 전통공예에 대한 애정과 연구는 이후 그가 쓴 여러 주요 논문들, 즉 [연옥디자인연구](1980), [오동상감기법 연구](1981), [신라 금관의 조형성 연구](1994), [전통혼례를 바탕으로 한 공예문화연구](2001), [고대금속공예 동,서양 교류사 연구](2003-2005) 등을 통해 확고한 이론적 틀을 형성해 나가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이른바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