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발표 작품/1970년대-자연의 단면
1970년대_자연의 단면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29. 15:42
1970s_Glimpses of Nature
Endless Passion for Korean Craft Later Serves to form the Backbone of Seung-Hee Kim's Art World
「귀국 후 김승희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주된 관심사는 한국금속공예의 역사적 뿌리를 찾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국립중앙박물관, 전통기능 보유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의 전통기법, 재료, 조형성에 대한 미학적 특징들을 연구하게 된다.
이러한 한국공예미에 대한 끝없는 관심을 이후 김승희의 작업세계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산맥이 되고있다.
70년대 김승희의 작품에서 우리는 자연의 단면, 그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김승희의 조형적 시선과 더불어 한국미의 한 특징으로 회자되는 '구수하고 큰맛'(고유섭), '무작위의 작위(김원룡)와 감은 미학적 언급들을 불현듯이 만나게 된다.」
1973년 미국 인디애나 미술대학 석사학위 청구전 1차심사 준비과정.
미국에서 3년간 준비한 작업들을 꺼내놓고 아이커만 교수와 친구들 앞에서 예비평을 듣는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 두려운 시간이었다.
1973, Preparing for Master's Degree Exhibition at the Metal Studio of Indiana University.
김승희가 미개척 상태의 금속공예에 발을 내댇은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대학 응용미술과에서 공예와 디자인을 종합적으로 배우고 있던 1960년대 후반, 그는 명동 길거리의 헌책방에서 미국에서 발행된 공예전문지 『크라프트 호라이즌 Craft Horizen』- 지금은 『아메리칸 크라프트 American Craft』로 제호 변경 -을 보게 되었다. 이 잡지에 실린 금속공예 작품 사진 몇 장이 감수성이 예민하던 대학생 김승희를 매혹했다. 대학 졸업 후 이 잡지에서 본 작품을 떠올리며서, 김승희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미국 유학을 꿈꾸며 몇몇 미국 대학에 입학 지원서를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미국 예술 교육에서 명망 높은 학교인 크랜브룩 미술대학원 Cranbrook Academy of Art에서 장학금 증서와 함께 입학허가서가 날아왔다. 그녀는 이 대학이 미국에서 얼마나 유명한 학교인지, 자신이 전공하게 될 금속공예가 어떤 분야인지도 뚜렷하게 알지 못한 채, 유학길에 오른다. 이 일 이 훗날 금속공예가 김승희가 태어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음을, 당시로서는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다. 첫 학기 금속공예 수업시간, 그녀의 여린 손에 커다란 망치와 금속판재들이 쥐어졌다. 서울의 신당동 대장간에서나 보던 망치질을 하러 유학을 왔나 싶어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외롭고 쓸쓸했던 유학시정르 견딜 수 있는 하나의 출구로서 금속작업은 차츰 더할 나위없는 친구가 되어간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단순한 형태이지만, 지금도 볼 때마다 크랜브룩 미술대학원 시절의 눈물 어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주병>이다. 크랜브룩의 지도교수 리처드 토마스Richard Thomas의 보살핌과 지도도 인상 깊었지만, 특강을 위해 크랜브룩 방문한 알머 아이커만 교수는 김승희에게 금속공예 기법의 기초부터 현대미술 이론을 토대로 한 작품개념을 뚜렷하게 심어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누군가 김승희가 금속공예 교육자로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이커만 교수가 그에게 준 예술교육의 철학적 씨앗이 그를 통해 꽃을 피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미국에서 제작한 것들은 주로 유연성이 강한 구리나 은을 재료로 하여 인체의 유기적 형태를 만들기 위해 망치작업인 내리기sinking, 올리기saising, 말아 붙이기seaming 그리고 ' 면고르기'기법 planishing 등을 주로 사용했다. 이러한 기법으로 이루어진 형태들은 당시의 다른 금속공예가들의 언급을 종합할 때, 황무지와 같았던 한국 금속 공예계에 커다란 충격파를 던져준 조형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귀국 후 김승희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주된 관심사는 한국 금속공예의 뿌리를 찾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국립중앙박물관, 전통기능 보유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의 전통기법, 재료, 조형성에 대한 미학적 특징들을 연구했고, 이러한 한국 공예미에 대한 끝없는 관심은 이후 김승희의 작업세계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산맥이 되고 있다. 이시기의 경향을 압축해서 하나의 특징으로 짚어내라 한다면, 그것은 단연 '자연의 단면에 대한 표현
이라 말할 수 있다. 1977년 한국공예가회 4회전에 출품한 <심심풀이>(1997)는 1970년대 김승희의 금속공예 세계를 대표하는 수작이다.
1970년대 김승희의 작품에서 우리는 자연의 단면, 그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김승희의 조형적 시선과 더불어 한국미의 한 특징으로 회자되는 '구수하고 큰맛'(고유섭), '무작위의 작위(김원룡)와 감은 미학적 언급들을 불현듯이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