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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발표 작품/2000년대-금속으로 그린 풍경

2000년대_금속으로 그린 풍경

2000s_Seung Hee Kim's Landscape in Metal
The artist's Landscapes bring back to life the beauty of Korea's traditional craft.

자연물과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 투명한 입체와 화면 가득히 채워진 색면의 조응관계, 자유로운 선묘적 표현과 면으로 이루어진 그릇의 연결구조, 정적인 정물과 유기적인 생명력의 표현이 어우러진 시적時的 단상 등은 김승희가 금속으로 그린 풍경들에 내재한 대비의 미학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김승희의 풍경들은 우리들의 전통속에 깃들어 있는 미적 특질들을 회화적 감성으로 용해시켜 다시금 되살아나게 하고 있다.
그것은 공예, 회화, 조각을 통합하고 아우르는 총체적 예술의 특별한 형식이며, 생활공간 속의 예술로 재위치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제3의 예술'이라 지칭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은 아닐 듯하다.





경계와 시대를 가로지르다.

김승희의 200년대는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한다. '나와 나 그리고 우리들'과 같은 주제의식은 그 표현적 정황을 여실히 반영한다. 그러면서도 김승희는 한국미의 특질을 현대 조형어법으로 번안하는 한편, 금속과 회화적 화면이 결합된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 나간다. 이 실험적인 성행은 사실 1980년대 시작된 것이 200년대에 들어서서 본격 발현되었다고 봐야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화랑 초대전에 발표되는 신작에서 그의 회화적 감수성은 어떤 제한이나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가운데, 그야말로 순수한 상태에서 결정적 표현들로 발현되고 있다.

그의 근작들이 표현하는 특징은 자연의 풍경을 원경遠景으로 처리하고, 그 자연을 배경으로 금속 형태가 근경近景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연 풍경은 대체로 산과 능선, 바람과 물, 대지 등과 같은 대상을 추상화한 것이다. 그 위에 결합시킨 금속 형태들은 불로초, 모란, 담쟁이 잎사귀, 나무와 이름 모를 식물 줄기 등이다. 조각에서 원형을 만들 때 흔히 쓰는 폴리코트에 안료를 혼합하여 굳기 전에 순발력 있는 붓질을 가한 것이 화면의 바탕이라면, 금속 형태들이 그 위에 적절히 배치되면서 하나의 완결성 있는 회화적 풍경을 완성한다. 주종主從 관계로 보자면 회화가 오히려 금속을 보족補足하는 종속적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이 부조浮彫적 회화, 금속으로 그린 입체적 풍경의 정수精髓는 단연 <풍경 2006> 중 작가 스스로 '춤추는 모란'이라 이름 붙인 길이 480cm의 대형 작품이다. 언젠가 모란꽃이 그려진 민화에서 착상을 얻어 오랫동안 마음속에 가둬 두었다가 이번 전시회를 위해 마침내 구현한 작품이다.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능선을 배경으로 기형적인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 엉키듯이 서있고, 그 주위에 모란이 춤을 추듯 이 화면을 부유하고 있는 이 작품은 마치 조선시대 왕의 뒤편을 장식했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연상시킨다. 물론 천지운행의 중심인 해와 달은 빠져 있지만,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그리고 장스와지조를 표상하는 소나무 두 그루는 남男과 여女의 영원한 화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오봉五峰은 조선시대 왕도정치의 한 축이자, 공자 유교 사상의 핵심이었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대신 표현한다.



김승희 작품세계는 이처럼 전통회화 혹은 한국미의 산맥에서 발견한 미적 영감을 현대 조형언어로 해석해온 지난 한 궤적이자 그 수평적 확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 속에 내재한 회화적 감수성을 금속과 결합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온 작가 김승희이기도 하다. 그가 화면의 자유로운 터치와는 달리 얼마나 치밀하면서도 종합적 사고의 소유자인가는 이 '춤추는 모란'이 침묵으로 증언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네 개의 판으로 조합된 부조 화면 전체는 철로 된 프레임에 철망한을 사영함으로써 그 큰 크기에도 불로하고 어떤 공간에 설치되더라도 이동이 가능할 만큼 가볍게 고안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가 한 재단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축복의 사계> 시리즈는 민화와 전통적 소재를 번안해 제작한 것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걸작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취를 담은 회화적 정서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서 매화와 소나무 등은 사각형의 화면 바깥에 배치해 공간의 확장을 의도함으로써 실내공간과 화면이 일체가 되도록 한 특이한 시도에서 그의 조형적 사유 속에 녹여 낸 동양의 일원론적 사고를 가늠케 한다.

자연물과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 투명한 입체와 화면 가득히 채워진 색면의 조응, 자유로운 선묘線描와 면으로 이루어진 그릇의 연결 정적인 정물과 유기적인 생명력의 표현이 어루어진 시적時的 단상 등은 김승희가 금속으로 그린 풍경들에 내재한 대비의 미학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다. 김승희의 풍경들은 우리들의 전통 속에 깃든 미적 특질들을 회화적 감상으로 용해시켜 다시금 되살아나게 한다. 그것은 공예, 회화, 조각을 통합하고 아우르는 총체적 예술의 특별한 형식이며, 생활공간 속의 예술로 재위치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제3의 예술'이라 지칭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형론가 이일李逸이 평했듯이 '내밀한 시적詩的 풍경'으로서 그의 금속회화들은 전통을 넘어 현대로 흐르는 현대미술의 한 혈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문인적 기품과 민화의 자유로운 조형의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조율해온 그의 창작세계를 통해 금속공예 5천년 역사의 숨결을 되새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바라보는 지평에 서있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 모색 혹은 한국미의 현대적 구현은 금속공예만이 아닌 우리 모드에게 주어진 무거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김승희의 근작 풍경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적 정취가, 무언가 우리들 가슴속에서 미적 감흥의 또 다른 경지를 열어 보여주는 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김승희의 '금속으로 그린 풍경'들은 우리들 속에 잠재된 한국의 정서, 그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게 한다. 금속공예의 새로운 지평선을 발견하는 그 순간, 문득 그 지평선에서 김승희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있는 나를 본다. 금속과 회화가 하나가 되어 우리의 삶을 적시는 순간.


제자 이상구의 구파발 작업실에서, 2006년 작업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