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s metal drawings of landscape are originate from Minwha(Korean Folkart)and play out into a grand symphony, reflecting her innermost emotions.
1991년도 김승희는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한다.
한국 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은 그가 조선조의 민화를 재해석한 조형의 세계로 빠져들었음을 공표하는 획기적인 전시였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김승희의 금속으로 그린 풍경들은 민화에서 기원하여 투명한 공간속에 머물면서
작가의 내밀한 심경 心境을 전달하는 심미적 변주곡變奏曲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5년 석주미술상 수상 기념전 박여숙 화랑.
1995, Commemorate Exhibition of the Sokchu Art Prize at Park-Rye-Sook Gallery
갈등과 화합도 껴안는 재해속의 힘
1991년 김승희는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한다. 한국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은 그가 조선 민화를 재해석한 조형 세계로 빠져들었음을 공표하는 획기적인 전시였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이 시기, 즉 1990년대 작품들이 금속공예가 김승희의 창조적 역량이 폭포처럼 쏟아진 황금기의 결실이었다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금속공예로 출발하였지만, 결코 ‘공예’전통 개념 속에 함몰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금속이라는 재료로, 금속으로 말할 수 있는 경계 없는 영토를 향해, 그는 기존 관념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 개인전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자신의 작품을 ‘Metal-Works'혹은 ’Metal-smiths'라 하지 않고 ‘Metal Arts'라 하요 금속공예의 외연을 확장하여 쓰고 있던 사실이다. 그렇다고 김승희가 공예를 버리고 회화나 조각과 같은 순수미술의 장으로 미련 없이 배를 옮겨 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전의 작품 경향에 비추어 온전히 금속이라는 재료만을 자신의 조형 메시지를 전하려 하였다. 그는 여기서 금속공예 전래의 녹청 기법인 파티네이션을 활용한 색채의 변주가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고, 그 감각적 조율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파격적 변신을 마주하였던 공예가들 가운데 그가 더 이상 금속공예가가 아니라고 말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금속공예가로 틀 지워 속박하기에는 현대미술 속에서 흩날리는 공예 이론의 개념적 폭이 너무나 좁았다. 김승희는 그 좁은 공예의 길에서 민화와 ’투명한 공간‘을 서슴없이 연결했다. <투명한 공간> 연작들은, 그래서 전통 민화가 모더니즘의 조형어법으로 새롭게 부활하는 의미 있는 현장이었고, 전통이 현대에 와서 머무르는 통사적統辭的 정박지였다.
이 개인전 작품집의 표지를 장식한 <오케스트라>를 보자. 김승희가 계속해서 구사해온 작품 표면을 스크래치하는 선묘 기법이 여전히 보이지만, 각진 화병의 형태 위로 꽂혀 있는 금속제 나뭇가지들은 마치 지휘자의 몸짓처럼, 현악기絃樂器의 선율처럼 감미롭게 흔들린다. 작품 제목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의 음률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는 시각 체험은 당연해 보인다. 김승희는 또 이 무렵, 가을이 지나갈까 초조한 나뭇잎들이 한산 가득 물든 듯한 ‘정물이 있는 풍경’에 천착한다. <은구과 잎사귀가 있는 정물>, <원뿔이 있는 정물>, <투명한 공간>, <화병과 잎사귀가 있는 정물>, <난초가 있는 풍경>, <화병이 있는 풍경>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조선시대 문인화 한 폭을 보는 듯 정갈한 감성에 젖어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기할 점은 대체로 왼쪽에서 바람이라도 부는 듯 화초 잎이나 나뭇가지 등이 오른쪽으로 치우친 구도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이 구도는 어딘가 기댈 든든한 언덕을 기대하는 심사처럼, 김승희의 90년대 풍경, 그 창조적 열정 너머 나부끼는 무언가 허전하면서도 고독한 예술가의 심리적 정황을 짚어보게 한다.
1995년 제6회 석주미술사 수상은 여성공예가로서 김승희의 활약을 공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석주미술상 수상 기념으로 박여숙 화랑에서 열린 초대전에서 김승희는 1991년에 연 개인전의 연장선에서 작품의 원경까지 아우르는 차원으로 나아가 회화적 풍경을 한층 강화시킨 작품들을 발표했다. 1991년도 개인전 전시품들이 ‘투명한 공간’을 내포한 ‘입체적 오브제three-dimensional object'였다면,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하얀 석회 바탕을 그림 배경처럼 처리하거나 부조적 설치를 염두에 둔 ’평면 부조적 오브제pictorical relief object'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작고한 평론가 이일李逸 선생이 평했듯이 ‘정물이 된 자연’ 내지는 ‘자연의 정물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김승희를 통해 구현된 자연의 정물화는 금속으로 재해석된 민화의 현대적 재림再臨이었다. ‘투명한 공간’에서 조선시대 민화의 주된 소재였던 그릇, 화병, 잎사귀, 나뭇가지 등과 같은 일사의 소재들은, 그로 인해 비일상적이면서도 문학적 정서를 환기시키는 시時적인 음조를 띄게 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풍경>연작이나 <적과 청>, <너와 나>, <우리들의 언덕>과 같은 제목이 시사하듯 대비와 갈등의 요소 혹은 화합의 의지들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투명한 공간’이 창작의 자유에 대한 작가의 열망을 은유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 대비적 제목에서 우리는 문득, 학교와 가족 또는 인간사의 관계성 속에서 느꼈던 어떤 갈들의 정황과 우울한 심경의 일단을 가늠케 된다. 이런 관점에서 검은색 철을 배경으로 선 화병의 한 줄기 잎사귀는 세상의 벌판에 혼다 남겨진 금속공예가 혹은 조형예술가 김승희의 외로운 ‘금속으로 그린 풍경’들은 민화에서 기원하여 ‘투명한 공간’ 속에 머물면서 작가의 내밀한 심경心境을 전달하는 심미적 변주곡變奏曲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간혹 그의 풍경에 등장하는 은으로 된 구형舊形은 구르고 싶지만 현실의 굴레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입장, 태도, 인간으로서의 숙명에 관한 은유적 응결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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