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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발표 작품/1980년대-풍경이 담긴 그릇

1980년대_풍경이 담긴 그릇

1980s-Embodying Landscape in Container
A time of rebellion against the limited colors of metal and making new waves of creation.


1980년대는 금속공예의 재료가 갖는 은색, 적색, 황동색, 검은색 등 색채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새로운 물결들이 일어났던 욕망의 시기였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전통 공예 기술로 치부 되었던 칠보가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고,
화공약품을 사용한 녹청기법 patina,
알루미늄에 착색을 하여 새시chassis를 만드는 공업기술을 응용한 애노다이징 anodizing 등
신재료와 기법이 금속공예계로 급속히 유입되었다.

19871987년 개인전 준비중, 거실에서... 1987, At home preparing for a private exhibition.


기능과 장르를 넘다, 자유에 빠지다

김승희 금속공예의 세계에서 ‘자연의 단면’에 대한 관심이 ‘산’에 대한 새로운 표현으로 옮겨간 것은 지금 살고 있는 평창동으로 이사한 것과 관련이 깊다. 당시만 해도 서울의 외곽 지대로 여겨지던 정릉, 북한산 자락의 국민대에서 일상으로 마주하는 산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국의 사계四季를 유감없이 선사했다. 제 8회 한국공예가회전(미도파화랑)에 출품된, 뚜껑 있는 합 <어느 날 아침의 행복>(1980)은 동, 황동, 백동, 은을 혼용한 유기有機적인 형태의 용기였다. 자연스럽게 망치 자국이 남겨진 몸체 위에 산의 은 선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뚜껑을 결합하여 실용성을 담보한 용기에 심미성을 덧씌웠다. 이러한 자연의 정서 혹은 즉흥적인 선의 변주變奏들이 적극 반영됨으로써 ‘풍경’에 관한 김승희의 사유가 서서히 그 자태를 드러낸다. 제 9회 한국공예가회전(문예진흥원)에 출품한 <기>(1981)는 네 겹의 층으로 이루어진 전통 함지박 형태의 큰 그릇으로, 은 땜 상감을 해서 물방울이 피어오르듯 표면을 처리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금속공예 기법을 한국미의 특질에 관하 표현으로 전환하면서 전통과 현대적 조형성을 화합시키려는 그의 노력이 하나의 확고한 예술세계로 구축되어 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기 그의 전통에 관한 연구는 논문 집필로도 이어졌다. [국민대학교 논문집]에 개제한 [연옥디자인연구](1980), [국민대학교 논총] 1,2집에 연이어 발표한 [오동상 감기법](1981)과 [오동상감기법의 응용](1982)은 교수로서나 금속공예가로서나 전통에 관한 그의 관심이 표피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이후<산> 연작이 발표되면서 화병 형태에 불규칙한 산세와 연필로 그린 갈대 잎을 연상시키는 은 땜 상감 표현 등은 회화성이 깃든 김승희 그릇에 관한 비평에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이 시기의 연작들, 즉 ‘풍경이 담긴 그릇’들이 발표되면서 기능을 넘어선 심미적 풍경들이 우리 시야를 꽉 채우며 들어온다. 은 땜 상감과 화공약품인 에바놀 - c 착색을 통한 검은색과 은색의 콘트라스트, 전면과 내면의 동시적 화면 구성, 동판에 거칠게 개셔놓은 선의 표현과 용기 입구를 형성하는 은색의 유광처리 등에서 대비를 통해 드러내는 김승희의 관계성에 관한 사유가 점차 확고한 틀을 형성해감을 엿 볼 수 있다. 평창동에 살면서 김승희는 동네 뒷산에 자주 오르면서 스케치를 하게 되는데, 그는 이 시기에 금속공예라는 재료로 풍경화를 그릴 수는 없을까 하고 남다른 고민을 품게 된다. 비대에 입학하기 위한 수련기간을 비롯해 그가 타고난 회화성에 대한 욕망이 밖으로 표출되는 중요한 계기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산에 오르면서...> 연작이 잉태되었고, 이윽고 세상의 빛을 얻게 된다. 1987년 동숭동에 있었던 그로리치 화랑에서 연 개인전이다. 그는 금속의 가능성을 벗어버리자 표현의 자유가 먹구름이 가신 뒤의 맑은 햇살처럼 열렸다고 술회한 바 있다.

김승희의 과감한 조형적 변신은 공예 부흥의 조류와 맞물리면서 ‘공예에서 오브제성’을 확산시키는 전위적 작가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1980년대는 금속공예의 재료가 갖는 은색, 적색, 황동색, 검은색 등 색채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새로운 물결들이 일어났던 욕망의 시기였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전통공예 기술로 치부되던 칠보가 다시 각광을 받아 화공약품을 사용한 녹청 기법patina, 알루미늄에 착색을 하여 새시chassis를 만드는 공업기술을 응용한 애노다이징anodizing 등 신재료와 기법이 금속공예계로 급속히 유입되었다. 착색 기법의 발전은 다양한 컬러의 표현이 가능한 분야로 금속공예를 재인식하게 하였고, 합성재료인 폴리코트polycoat, 플라스틱plastic, 아크릴수지acryl 등을 금속과 결합하는 경향이 강하게 분출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바람을 전파하는 전위의 지점에 바로 금속공예가 김승희가 있었다. <산82-3>(1982), <산에 오르면서 85-5>(1985), <산에 오르면서 85-6>(1986)을 비롯하여 1987년에 제작된 <삼각형을 위한 변주>, <가을편지>, <낮은 음성>, <노을> 등이 실용적 용기로서 풍경을 담은 그릇이었다면, <추수>, <하염없는 생각>, <바람과 무지개>, <풀바람>등은 회화적 풍경화로서 벽면 혹은 공간을 위한 오브제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이해, 즉 1987년에 연 개인전은 금속공예가 김승희를 조형예술가 김승희로 전환사키는 의미있는 기회였다. 이때부터 ‘김승희 양식Seung-Hee Kim's style'이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생길 만큼, 그의 조형적 형태form가 널리 알려지면서 일정한 규칙성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보아도 그리 지나친 해석이 아닐 듯 하다.

1980년대를 가로지르는 김승희 양식은 역동적이고 불규칙한 마름모꼴에 기하학적인 채색 형태가 부가되고 내부와 외부가 교차되면서 어떤 속삼임을 자아내는 그런 형상으로 집약된다. 그러면서도 거친 선묘적 스크래치scratch가 금속 표면을 질주하는 가운데 빗줄기, 갈대, 눈발, 바람의 흔적과 같은 시적인 정서가 결부되면서 마치 음악적 화음을 듣는 듯한 환상에 젖어들게 한다. 이 개인전에서 김승희의 조형적 변주는 아주 격렬한 탄성을 지닌 가야금의 음조처럼 저 먼 역사의 지평에서 들려오는 우리의 소리, 그 낯선 전통의 호흡을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전형사와 같았다. 그에 의해 현대적 조형 어법으로 번안된 전통의 음률들, 그 풍경을 담은 그릇들, 장신구들, 오브제들은 바람처럼 다가와 우리의 각진 정서들을 부드럽게 흔들어 깨웠다. 그의 작품은 안과 밖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으며 꽃이 없어도 이미 화병임을 알 수 있었으며, 굳이 물을 담지 않아도 풍경된 그릇들은 어느 틈엔가 일상의 공간을 흐르고 있었다. 풍경 속의 그릇일까, 아니면 금속으로 그린 풍경화일까... 작가의 시적인 심상이 우리의 가슴속에서 밀려들어와 합류되는 어느 순간, 공예와 미술로 굳어진 장르의 벽은 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풍경이 된 그릇, 그릇에 담긴 풍경들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