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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보도자료

장소현, 미술평론가_ 2012

<꿈꾸는 쇠엔 바람이 통한다. >

 

<1>

김승희의 금속 작품들은 부드럽고 따스하다. 금속의 본질을 잘 알고 체화(體化)시켰기 때문이다.

쇠는 차갑고 날카로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쇠붙이의 본디 모습은 부드러운 흙이다. 돌덩어리인 광석은 흙이 덩어리져 굳은 것이다. 그 광석에 열을 가해 우리가 원하는 쇠붙이를 얻는다.

그러므로 쇠붙이는 본질적으로 부드럽고 따스한 것이다. 일부러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벼려 무기나 연장으로 만들지 않는 한 그러하다.

 

<2>

김승희 작품에서 시()적 울림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작품의 제목들을 보면 작가 자신이 시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하는 것을 읽을 수 있고, 많은 평론가들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이야기와 음악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우리들의 언덕>이라는 작품 제목이 주는 울림은 곧바로 다양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정서다. 무슨 이야기일까 상상력을 자극한다.

음악성은 더 중요한 부분이다. 작가 김승희는 <오케스트라> 같은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음악적 운율을 담으려 시도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음악성이 짙게 배어 있다. 그것은 쇠붙이의 속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쇠붙이는 저마다의 소리를 머금고 있다. 그것을 때리거나 치거나 긁거나 문지르거나 하면 소리가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작가 김승희는 조형을 통해 그 쇠붙이 소리들을 끌어내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참으로 특이한, 그리고 중요한 재능이다.

 

<3>

쇠로 그린 김승희의 그림들이 편안하고 넉넉한 것은 비움의 미학에서 비롯된다.

쇠를 짜르고 붙이고 다듬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료의 특성상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단순화될 수밖에 없는데, 김승희의 경우에는 그 단순화, 대담한 생략, 비움 등이 오히려 조형적 강점이 된다. 붓으로 그린 그림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 김승희의 경우 그림을 그린다가 아니라 그림을 만든다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김승희처럼 공예에서 출발하여 표현 영역을 거침없이 넓혀가는 경우, 공예적 요소나 디자인적 요소들이 자유로운 표현에 걸림돌이 되기 쉽다. 실제로 그런 예를 많이 본다. 그런데 김승희의 경우는 그 걸림돌들을 징검다리나 도약대로 삼아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가는 슬기를 보여준다.

김승희는 작품의 소재를 민화(民畵)에서 빌려온 예가 많다고 하는데, 소재를 빌려왔을 뿐 공간 배치나 과감한 여백 남기기 등에서는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열어간다. <투명한 공간> 연작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공간 인식이나 <금속으로 그린 풍경>에서 바람이 통하는 공간 처리 방법은 매우 탁월하다. 김승희 식의 독특한 여백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4>

모든 미술 분야가 다 그렇지만 특히 공예에서는 손과 머리와 가슴의 균형이 핵심적인 요소다. 어느 하나가 튀어나와 조화가 깨지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기능공에 머무느냐 작가가 되느냐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작가는 작품에 따라 손과 머리와 가슴의 몫을 치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물론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조절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작가의 자기 제어가 필수적이다. 특히 김승희처럼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때는 더욱 치밀한 컨트롤이 요구된다. 금속작품의 제작과정이라는 것이 대체로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노동의 연속이기가 십상이기 때문에 작가는 결정적인 순간 순간 생각과 마음의 방향을 바로 잡고 그에 맞게 손을 움직여야 한다. 작가 김승희는 그 까다로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5>

금속공예는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다. 그리고 하늘과 이어진다. 그릇이나 수저처럼 먹고사는 일, 즉 생명에 관계된 물건들은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절대 안 된다. 하늘과 연결되는 제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쇠붙이로 무기를 만드는 일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쇠붙이로 연장을 만들고, 종이나 부처, 아름다움을 위한 도구들과 돈을 만들었다. 아주 할 수 없는 마지막에나 무기를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 금속공예의 기본 마음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금속공예 작품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야 한다. 거짓으로 마음을 해쳐서는 안 된다.

 

<6>

언젠가 김승희의 작은 작품들을 보면서, 앙증맞게 조잘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 본 것은 브로치들이었는데, 돌아보니 다른 작품들도 뭔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알까? 우리도 가끔은 외롭다는 걸?”

알 리가 없지. 사람들은 자기 하나 챙기기도 너무 힘들고 바쁘거든.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냐? 뭐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니?”

, 오늘 우리 아주머니가 고기구이집에 갔는데 나도 할 수 없이 따라갔거든... 그런데, 아이구 고기 연기가 어찌나 독한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 게다가 건너편에 앉은 아줌마가 번쩍번쩍 커다란 브로찌를 달았는데 유명 브랜드 제품인 모양이야.... 어찌나 거들먹거리는지 구역질이 나더라구... ”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

아니, 한마디 쏴줬더니 쏙 들어가더라!”

뭐라고 했는데?”

네까짓 게 뭐라고 까부니, 공장제품 주제에! 그랬더니 찍 소리 못하더라.”

잘 했다, 아이구 시원하다!”

근데 넌 아주 기분이 좋은 거 같다.”

응 우리 아가씨 따라서 상쾌한 시골 숲길을 걸었어, 새소리 들으면서. 그리구 돌아오는 길에는 계속 모차르트 음악을 들었거든, 그래서 기분이 참 좋아.”

그랬구나, 정말 좋았겠다. 그런데 넌 아줌마 소속 아니었니?”

응 우리 집에선 장신구들을 한 군데 모아놓고, 온 집안 여자들이 아무나 마음에 드는 대로 사용해. 아름다움의 민주화인 셈이지.”

아름다움의 민주화? 이야, 그거 참 멋있다!”

 

2012.06.11

장소현

미술평론가, 시인, 언론인

라디오방송 진행자 등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