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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신구문화연구회/수요강좌

한국은 금속공예의 나라(2)



 

금속활자의 발명


수많은 불교용품이 금속으로 제작되는 사회적
, 문화적 분위기에서 금속장인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업적인 금속활자를 발명하게 된다.

금속활자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일치하지 않지만 13세기부터 금속활자 인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현존하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로된 인쇄분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인 것이다. 그 후 계미자를 1403년 만들어서 20여 차례나 금속활자로써 책을 간행하여 한국은 세계 인쇄사상 유래없는 인쇄왕국이 되었다.

금속활자 이전에 목판 인괘본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지양하기 위하여 그들은 금속활자의 발명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팔만대장경」에서 보다 싶이 팔만장의 경판을 만들고 보관한다는 것은 엄청난 공간과 건축술이 필요했다고 보며, 좀 더 합리적이고 쉬운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글자에 따른 주자를 만들어 조판 작업을 하는 금속인쇄술을 개발하였다고 짐작된다.

결과적으로 목판인쇄 같이 많은 양의 목판과 보관장소가 대폭 축소 될수 있었으며 옮겨 다니며 인쇄하기도 좋았을 것이다.


 Typography metal Bock, 1300AD, 1.0x1.0x0.7cm Koryo Dynasty

cover of the book Jikji-Buddist scriptures one of remaining earliest Metal Type printed book.


 

3) 조선시대 (1392 AD - 1909 AD)


조선을 세운 이태조는 배불숭유정책으로 지금까지 금속공예의 배경이였던 불교는 유교로 그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유교는 인간의 도리를 가장 우선시하는 생활철학이였기에 금속공예는 좀 더 민중적이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조선시대에는 「음양오행」과「삼강오륜」에 기초한 생활문화의 전성기였다고 본다.

주택설계시 남과 녀의 주거부분은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고 담으로 가려져 있어 문을 열어주어야 남자가 출입할 수 있다는 당시 생활문화 현상들은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선비들은 사랑채에서 지필묵으로 지칭되는 「문방사우」와 더불어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며 풍류를 즐기는 고급문화를 향유하면서 그들을 위한 금속공예 명작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조선시대 선비용 금속공예로는 문방구(필기, 연적, 붓꽂이)와 장죽, 담배함, 책장, 촛대, 남성용 갓 장신구등 다양하다. 특히 철제은입사기법은 가장 뛰어난 기술로 인정되었다.


Candle holder technique of Ipsa, (L)28.8cm  choseon Dynasty 

three tobacco case, technique of Ipsa, 1700-1800AD (H)9.8cm choseon Dynasty


 Candlestick, Technique of Ipsa, 1700-1800AD (H) 46.5 Choseon Dynasty


 

한편 안방을 차지한 부인들은 집안 살림을 돌보고 곳간 열쇠를 관리할수 있는 실직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양반집 부인이나 자녀들은 수를 놓으면서 바느질, 구슬꿰기등의 수공예에 많은 시간을 보낼수 있어 정성이 깃든 아름다운 장신구와 생활용품이 제작되었다.

부녀자들이 집안에서 섬섬옥수로 만든 이러한 섬유, 도자, 금속공예들은「규방공예」라 하여 독특한 영역으로 인정되고 연구 되었다.

또한 동(79%), 아연(19.7%), 주석(1.3%)의 합금 유기그릇의 방짜 기법이 넓게 퍼지면서 일반인들의 식기, 수저, 주전자, 술잔, 술잔대, 촛대, 화로, 신선로, 세면기등 생활용구와 제기 및 향로등이 폭넓게 제작되었다.

metal tableware set. 1900AD. Alloy of copper zinc tin was widely spread out during Choseon dynasty. The tableware and everyday goods were produced by hand-forged technique.


Metal spoons and chopsticks are very popular until now

Metal table


Traditional way of making metal container, by National treasure of pounding metal works.

Sir Lee, Bong-joo.


 

조선시대 여인들은 특별히 화려한 색상의 의상과 장신구를 좋아하였다 음양오행설에 의하여 색채구성과 디자인은 엄격하게 정해졌으며 그러한 틀 안에서 최대한 화려한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법과 소재들이 개발되었다.

존두 사상에 의하여 머리장식들이 개발되어 족두리, 비녀, 뒤꽂이, 떨잠, 첩지등과 더불어 옷고름에 매달 수 있는 노리개, 바늘집, 장도, 가락지등이 개발되었다.




 

Front and Back of wedding custom-embroidery works by women, Choseon dynasty.


Up style of Hair, and various Jewelry for Hair. Choseon dynasty


Various Hair stick, Choseon dynasty.



 

4) 근대의 금속공예 - 일정시대 (1909 - 1945)

1909년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금속공예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한양(지금의 서울) 이왕직 미술품 제작소에는 금속세공부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서구적인

디자인, 현대 장신구를 위한 세공술도 장인에게 교육되었다.

당시 광교 청계천 주변을 중심으로 금, 은 도방가에서는 40-50여명 정도의 금속세공 장인들이 모여 있었고, 한 방에서 3-4명의 장인이 각기 소규모의 연장을 준비하고 손님들을 상대로 주문을 받고 수선일을 하기도 하였다.


1940년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한국의 유기그릇들은 일본의 대포나 총알의 재료로써 각출되어 많은 숫자가 녹혀져 버리는 불행한 역사가 금속공예의 커다란 맥을 잘라 버리게 된다.

일본은 일반 가정집에서 쓰고 있는 작은 수저까지 모두 각출할 정도로 금속소재가 부족했던 것같다. 또한 사치품 금지령으로 모든 금, 은 세공 장인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대부분의 유기그릇 제조 공방은 폐업 조치되어 장인들은 전업할수밖에 없었다.

일정시대를 거치는 36년 동안 한국의 금속공예의 맥을 차단되었고 해방이후 1950년 발생한 6.25 전쟁은 우리의 전통을 다시 한번 짓밟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5) 현대의 금속공예 ( 1960 - 현재)


한국의 현대 금속공예는 1960년대를 태동기로 부를 수 있다.

당시에 미술대학에 응용미술학과 내에 공예 과목이 개설되면서 도자, 목칠, 섬유, 금속을 조금씩 다뤄볼 수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 서울대, 홍익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 금속공예 전공이 개설되어 개척기였다고 본다.

교과과정을 편성하고 금속 실기실에 필요한 기본시설을 갖추는 것조차 어떻게 하는 줄 잘 몰라 자주 시행착오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시설방법이 대학공방에 쉽게 적응되지 못하였으며, 전통공예가들이 대학에서 강의할 수는 없는 사정이었다. 그러나 1968년 문화재 보호법이 생기면서 전통장인들은 인간문화재로 활동할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돌아온 필자(1974년 귀국)나 유리지(1976년 귀국)같은 유학파들이 미국식 교육방법과 실기실 시설을 주도하기가 오히려 매우 용이하였다고 본다.


 


 

1974년 한국공예가협회가 창립되어 대학에 공예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

재료별로 분과를 만들어 금속, 도자, 섬유, 목칠의 4개의 분과로 발전되어 갔다.

한국공예가협회가 처음 결성될 때에는 9명으로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약 1600명 정도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단체이다.

현대공예가들의 숫자가 많아진 만큼 다양한 현대금속공예가들의 작품 활동이 인사동 전시장을 중심으로 개인전이나 단체전 형태로 열리면서 매주 다양한 새로운 전시회들이 개최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편 1960년대 제 3공화국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더불어 보석과 귀금속 산업이 청계천 주변 기계공작공방, 재료상가들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종로 3~4가 일대로 집결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우리 나라 귀금속, 보석 산업은 약 45천억원의 시장규모를 이루고 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다이아몬드 브랜드를 중심으로, 브랜드의 인지도를 빠른 속도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한 학계의 발전, 귀금속 산업의 발전과정에서 잊혀져 가는 것은 우리의 찬란한 금속공예 역사에 대한 인식과 조형성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조형성을 찾아 디자인 하는 것은 우리문화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기틀이 될 것이며 오늘 특강의 목적은 우리문화 정체성의 중요성을 작가들과 공예 애호가들에게 알리고자 함에 있다.

문화관광부에서는 2000년 공예 문화 진흥원을 설립하여 공예의 산업화와 관광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공예화랑 크래프트하우스(갤러리 소연)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공예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여 전통적 요소들을 바탕으로 현대적 응용과 디자인 연구 개발을 유도할 것이며, 전시장을 찾아주는 관람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것이다.

2012. 3

김 승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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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미츠, 츠네요, 오영근 역 로마 문화 왕국, 신라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1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의 황금 예술경주 박물관 출판부, 2001

김승희 신라금관의 조형성 연구국민대학교 조형논총 제 13, 1994

김승희 조선조 여성의 머리 장식품 연구국민대학교 조형논총 제 15, 1996

김승희 전통 혼례를 바탕으로 한 공예문화 연구국민대학교 조형논총 제 20, 2001

김승희 고대 금속공예 동서양 교류 연구Ⅰ』 국민대학교 조형 논총 제 22, 2003

김승희 고대 금속공예 동서양 교류 연구국민대학교 조형 논총 제 24, 2005

김승희 한국 불교 금속공예의 특징과 의미국민대학교 조형 논총 제 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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